이도희"의 HVAC 이야기"입니다.         방명록    질문/답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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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19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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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이야기 - 중동


동남아의 수출에 자신을 얻어, 중동에도 수출해 보기로 했습니다. 1978년경이었습니다.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 등에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던 때로, 시작은 중동에 진출한 한국 건설회사용을 겨냥했고, 이 계획은 적중했습니다.  

삼호주택에서 사우디 현장의 직원 숙소용으로 300여대의 패키지에어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5톤 패키지에어컨 300여대의 납품에 성공했습니다.   단, 실내용만 한국에서 만들고, 실외용은 히타치 제품을 그 대로 쓴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첫 작품이었습니다.   삼호주택으로 부터는 Local L/C를 받았고, 이를 근거로 히타치에 수입 L/C를 개설하였습니다.    히타치 제품을 일본에서 중동으로 바로 보내는 데는 문제가 많아, 일단 부산에서 수입통관을 마친 후 그 자리에서 수출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대로 수출 실적으로 잡혔습니다.

중동의 여름 한참 더울 때는 외기가 50C 까지 올라가, 비행기에서 내리면 마치 대형 보일라 앞에 선 것처럼 숨이 콱 막히나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서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곳입니다.    건구 온도가 이렇게 높다 보니 건설 현장 일에 애로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 생각나는 것은 시멘트 콘크리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배합하는 물 온도가 규정보다 높으면 콘크리트 제작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었습니다.   시멘트 콘크리트 배합 시설을 배쳐플랜트라고 하는데, 배쳐 플랜트에 쓰이는 물 온도를 낮추는 시설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코오롱 건설의 배쳐 플랜트에 물 냉각시설이 필요하다하여, 대형 공냉식 칠러를 납품했는데, 국내에서 시험을 못해본 터라, 외기 50C의 조건에서 돌아 갈 수 있을 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심전심에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적절한지 몰라도, 현장 담담 엔지니어는 설치된 칠러의 콘덴서 외부에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를 장착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고도 안돌아 갈 수는 없었지요.
 

이런 국내 건설사 납품을 배경삼아 슬금슬금 직 수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를 주로 겨냥했습니다.   쿠웨이트 Al-Ahlia 사장 Shawkat Ghamrawi는 레바논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엔지니어로 신사였습니다.  한국에 한두 번 왔다가더니 Rooftop를 약 50여대 시험 발주를 하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삼성, 럭키 등 대 기업 가전제품 업자들이 에어컨 시장에 뛰어 들지 않았던 때라 부천 공장은 내수 제품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습니다.  히타치와 기술 제휴되어 있을 때라 국내 시장 용 패케지는 히타치 설계대로 만들었고, 일본 기후와 비슷한 국내 시장에서 큰 무리 없이 잘 돌았습니다.

그러나 중동용 Rooftop은 히타치와 기술 제휴가 안 되어있어, 자체 설계와 시험을 거쳐야 했는데,   당시 부천시 내리 공장에는 제대로 된 시험 시설이 없어, 에어컨의 용량 측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설계인들 제대로 할 수가 없었지요.  그냥 주먹구구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형 적인 Kuwait 주택)                                        (옥상에 설치된  실외기)

증발기와 응축기의 크기는 히타치 카다로그를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카탈로그에 표시된 히타치의 5톤 증발기의 구조가 2 row이었습니다.    나는 이를 3 row로 바꾸면서 면적 (face area) 을 조금 줄였습니다.  전체 열 교환 면적을 늘었다고 확신하면서.      콤프레서는 Copeland를 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선적을 하여, 현지의 고급 주택들에 설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냉방능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압축기 모터의 전류가 빵빵하게 규정치 까지 올라가야하는데, 여유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냉방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Shawkat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히타치 카탈로그에 표시된 2 row는 3 row를 잘못 표시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과 적으로 증발기 면적을 히타치보다 줄였으니 결과는 뻔 한 것이었지요.  일본도 ARI 같은 용량 검증기관이 없어, 냉방기의 용량을 뻥튀기 하던 때였으니까, 같은 5톤 용량이라도 미제 보다 15-20% 낮은 때였습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5톤이 설치된 현장은 7.5톤으로, 7.5톤이 설치된 현장은 10톤으로, 10톤이 설치된 현장은 15톤으로 교체하는데 동의했고, 그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기고 했습니다.   기술과 경험이 뒷바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두른 탓에 지불한 비싼 대가였습니다.

이 회사의 수석 기술자이자 2인자로 Krishna Frashad란 친구가 있었는데, 인도 출신으로 채식주의자였습니다.  한 번은 이 친구가 자기 집으로 저녁식사에 초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 식단이 별 거 있겠나 생각하고 갔는데, 천만에,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식물성 갈비찜, 식물성 불고기, 식물성 탕수육 등 없는 게 없었습니다.  맛도 동물성 음식보다 월등히 좋았습니다.  놀랐습니다.  
가족으로 부인과 예쁜 어린 딸이 있었고, 부인에게 요리재료를 인도에서 수입했냐고 물었더니, 모두 현지 시장에서 구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부인의 요리법을 배울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요리들이었습니다.



이스람교는 음주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술 마시다 들키면 처벌이 가혹합니다.    막걸리나 소주 한잔을 걸쳐야 작업 능률이 오르는 한국 건설근로자들로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습니다.   어느 날, 쿠웨이트 시장, 약국, 슈퍼마켓 등지에서 빵 만드는 이스트가 완전히 동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빵 만드는 재료가 없어 졌으니, 난리가 났었습니다.    한국 건설근로자들이 싹쓸이 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도쥬스에 이스트를 넣어 적당한 조건을 만들어 아주 근사한 포도주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고, 이 방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이스트가 동이 난 것이었습니다.

쿠웨이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우디에도 직 수출 길을 텄습니다.   당시 내리 공장에서는 처음으로 압축기를 개발했는데, 아마도 국내 최초의 냉동 압축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직 life test도 못했으나 수입에 의존하던 압축기를 국산으로 대체하는 때라 자긍심이 대단할 때였습니다.  사우디 수출 상담이 구체화 되어, 약 50대 정도 에어컨의 L/C를 받아 Rooptop과  Split를 다시 설계할 때였습니다.

사장님께서, 이 번 수출품에 새로 개발된 압축기를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펄쩍 뛰었습니다.   아직 성능이 미지수이고, 국내 시장에서도 검증을 받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가혹한 조건인 사우디 시장 용 에어컨에 이 압축기를 장착할 수 있겠느냐, 우선은 확실한 Copleland를 쓰자고 하였습니다.

사장님께서는 " 이 차장은 왜 적극적으로 생각을 못하느냐.  안 되는 쪽만 생각하느냐"며 핀잔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 될 것은 뻔 하나 사장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처음  개발된 압축기를 장착하여 선적을 하였습니다.    결과는 예상 보다 훨씬 참담했습니다.   현지에 설치되어 며칠 돌자마자 에어컨이 안 돈다고, 급히 와보라는 텔렉스가 수입회사 지배인 Hunaine로 부터 왔습니다.    Hunaine도 레바논 사람으로 당시 돈 많은 중동 사람들의 손발은 이웃 레바논이나 시리아 사람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급히 현장에 도착하여  보니, 하루 이틀 돌아가던 압축기가 이유 없이 돌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밀폐형을 절개하여 내부를 보았습니다.   압축기의 구조는 제일 상부에 모터, 그 밑에 크랑트샤프트와 피스톤 실린더, 제일 밑에 메탈 베어링 순서의 전형적인 왕복동식 압축기였는데, 문제는 제일 밑의 메탈 베어링이 사우디의 혹독한 열기에 의한 높은 응축 온도를 견디지 못하여 용착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크랑크샤프트와 압축기 몸체에 녹아 붙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해 장착하여 판매한 국내 시장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압축기의 절반을 교체해 주었다하니, 50도를 오르내리는 사우디용 에어컨에 이 압축기를 장착한 것 자체가 무모한 것이었고, 끝까지 사장님을 설득하지 못한 내 탓도 있었으나 일개 차장급 사원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망가진 압축기 들)                                   (테스트 하는 필자 - 외기 온도가 50도를 오르내린다)

Hunaine는 당장 고쳐 놓으라고 종 주먹이지, 해결책은 난감하지, 참으로 궁지에 몰렸던 때로 기억합니다.  당장 직속 이 과장에게 서비스 기사 몇 데리고 오라고 했으나, 본사로서는 당장 보내기는 어려운 때였습니다.  당시 사우디 사람들은 내방한 사람들의 여권을 보관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돈 벌러 온 외국인들과의 문제 해결을 손쉽게 하겠다는 발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권이 없는 나는 꼼짝없이 인질이 되었습니다.   해결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업무에는 충실했으나 불운했던 Hunaine)

한 달이 지나도 본사에서는 사람을 보내지 못 보내고 있었습니다.  
Dammam의 조그만 호텔에 머물면서 근처의 Jubail은 자동차로, Riyadh는 비행기로 가서 한국 건설회사에 뭐 좀 팔 수 없을까하고, 기웃거렸으나, 본 공사용 냉방 장비는 국산을 쓸 수 없게 사양이 만들어져 있어 하릴 없이 시간과 날짜만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텔 식당의 식단은 양고기 위주였습니다.  양고기 꼬지인 시시카바, 넓적한 밀 빵, 레몬과 올리브를 곁들인 반찬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지겹게 먹었습니다.  다행이 쿠웨이트에 없는 가짜 맥주가 (Non Alcoholic) 이곳에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노래방에 가면 나오는 맥주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느끼한 양고기 꼬지는 가짜 맥주와 함께 먹을 만 했고, 한 달이 지나니 가짜 맥주는 완전히 입에 맞게 되었습니다.   후 일 귀국하여 마신 진짜 OB나 Crown 맥주는 당시의 가짜 맥주보다 맛이 덜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사람들이 안 오자, 나는 Hunaine와 담판을 했습니다.   "내가 가서 사람을 보내야지, 내가 여기 앉아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내가 여기 남아있고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을 바라느냐, 아니면 내가 귀국해서 사람을 보내서 문제 해결을 하는 것을 바라느냐"고.    한 달 만에 여권을 돌려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밟아 탑승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나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출국대 쪽으로 나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또 상황이 변하여, 못 가게 할 수도 있어, 못 들은 척하고, 나가지 않았더니, Hunaine가 탑승대기실까지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중동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못 떠나게 하는 일은 아니었고, 선물을 주기 위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 뒤 직속 이과장과 서비스 직원 몇 사람을 보내어, 압축기를 모두 Copeland 압축기로 교체해 주었습니다.  본사에서 보내기도 했고, 그 쪽 시장에서 일부 사서 쓰기도 했는데, 손해는 막대했고, 품질 문제로 이미 입은 명성의 치명타는 만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즈음 사장님은 간경화로 고생을 하시다 별세하셨기 때문에 오판의 참담한 결과를 모르셨을 것입니다. 

--- 계속 ---

 2011.10  스마트폰에도 알맞게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