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의 HVAC 이야기"입니다.         방명록    질문/답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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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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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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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19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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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틈새 시장

 김상도 씨

 Kam Leong



틈새시장 (Niche Market)

틈새시장은 경쟁자들이 그리 많이 기웃거리지 않는 호젓한 곳입니다.
가지고 노리는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경쟁이 한결 수월하여,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1983년 초 경원기계 (지금의 센추리)를 그만 두기로 결심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틈새시장을 노려 자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hvac&r 완제품의 수입이 전면 금지되어 있을 때였으므로, 수입이나 국내 시장은 넘볼 수 없었고, 경원기계 같은 제조사의 국내 대리점은 할 수가 있었으나, 성에 차지 않아서, 대뜸 세계 최대의 HVAC&R 제조사인 York를 콘택했습니다.  
 
한국의 총대리점을 하겠으니 허락해달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약 5cm 두께의 시장조사와 개인자료를 첨부한 신청서를 보냈더니, 아시아 담당 GM인 Larry Cunningham 이 면접 보러 왔었고,
Pennsilvania주의 York 시에 있는 York International의 본사에서 GETP (Graduated Engineers' Training Program)이란 3개월반 짜리 집중 교육을 받은 후 한국최초의 York 총대리점 임명장을 받았고,
 

여의도 고려빌딩 802호에 조그만 사무실을 차리고, 처음으로 노린 틈새시장이 중동에 진출한 한국건설 시장이었고, 처음 마딱뜨린 Project가  Islamic University 용 6000톤 짜리 칠라 6대에 6백만불짜리 Project란 이야기는 "현장 - Islamic University"에 재미있게 쓴다고 썼습니다.

현대건설 지상무와 강이사를 만난 것도 이 즈음이었고, 계동 현대 사옥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우리나라 설비설계설비 업계의 최고봉 김학수부장 (당시), 전교진 차장을 만난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그들과 이런 이야기 중에 종교이야기도 나왔고, 해외근무가 당연시 되던 때여서, 싱가포르 창이 공항 현장에 근무하면서, 통신교리로 그 어려운 영세 교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그 까다로운 천주교 영세를 받을 때는 필자가 전교진의 차장의 대부를 서기도 했지요.
 
당시 중동 건설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으므로, 후속 프로젝트를 따고 hvac 장비를 판매하는 것도 점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들입다 견적만 산더미처럼 만들어 주었지만, 결과는 영 신통찮았습니다.
 

그래서 점차 다음으로 눈을 돌린 틈새시장이 주한 미군부대 시장이었습니다.

큰돈은 안 되어도 짭짭한 시장이었고, 이 시장을 상대하다 보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무실, 식당, 막사 등을 포함한 미 군사시설은 엄격한 미 군사 Spec대로 설계하고 시공, 감리되었는데, 당시 주한 미군을 상대로 하는 미국 hvac 설계사만도 7곳이나 되었습니다.

COE spec은 참으로 잘 만들어져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길 게 언급을 할 생각인데,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어 주저주저하고 있습니다.
나병철씨는 아직도 COE에서 Approval 일을 하고 있는지... 그 깐깐한 최영감은 지금도 인상 쓰고 앉아있는지... 

국내 건설사 마다 FED 부서가 있었는데, 주한 미군부대 공사를 맡는 부서였습니다.   모든 것을 설계된 군사스펙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부실공사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때였습니다.   FED (Far East District)는 미국 공병대 COE (Corp Of Engineer)의 직속으로 지금도 을지로 5가에 부대가 있습니다.  며칠 전 한총련 학생들이 몰려가 미군 물러가라며 부대 앞에서 뼁끼통을 던지면서 시위를 했던 곳이기도 하지요.

국내 건설사는 모든 건설자재를 종합 Supplier로부터 공급받았고, 필자 같은 Maker 대리점은 종합 Supplier에게 미국에서 물건을 납품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뛰어들 당시에 보니까 여의도 필자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위용호 사장님의 국제가 Trane 제품으로 FED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Carrier와 York 등살에 Trane은 해외 건설 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었습니다.

주로 취급한 제품은;
막사용 Air-cooled Chillers, Fan Coil Units, Heat & Ventilating Units,
식당이나, 강당 등, 큰 공간용으로 Air-cooled Condensing Units 와 DX Air Handling Units,
등이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춘천 역 근처 Camp Page에 설치한 지역냉방용 대형 터보 Chiiler 3대였습니다.

지역 냉방으로는 한 반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Trane과의 격렬한 경쟁을 벌린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Supplier는 United 사.  그 때 York 사장 Tom Vincent 가 마침 한국 방문 중이기에, United 서울사무실에 데리고 가서 지원을 받았고, United의 반승낙을 받았으나 아직도 멈칫거리기에, United의 본사가 있는 LA로 날아가서, P/O를 받아 쥐었던 기억도 납니다.   겸사겸사  York 본사에 갔더니, Tom은 Camp Page 용 Chiller는 자기가 딴 것이라고 하여 웃기기도 했습니다.   Tom 과는 인간적으로 참으로 친했는데..  York를 그만 두고도 가끔 서울에 오면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돈이 꽤 많은 사람이라, 한국에 스키장 건설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이혼한 홀아비라 한국 여자들에게 관심도 많았었던 것 같았습니다.
 

큰돈은 못 버나 COE job에 상당히 재미를 보고 미군부대란 부대는 모조리 드나들고 있을 때인 80년 대 말부터,  미군부대 일은 점차로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국내시장이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관세는 무지 높았고, 고압가스 등 비관세 장벽이 엄청 높았지만, 대형 chiller, Rooftop 등이 수입 개방되면서 틈새시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완전개방되기 전인 80년대 중반부터는 만도기계가 York로부터 터보압축기만 들여다 터보 chiller를 국산화하기 시작하여, 큰 매상에는 도움이 안 되었으나,  제일합섬 구미공장 대구공장, 미원 군산공장 음성공장, 삼성전자 수원공장 온양공장,  현대전자 이천 공장,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 대전 EXPO 등에는 국내제조사의 제조능력을 벗어난 1000~2000톤 사이의 대형 chiller를 공급하기 시작할 때는 틈새시장이라도 상당한 규모로 발전을 했습니다.

국내 제조사들이 완전히 손 놓고 있는 Rooftop 시장도 짭짭한 틈새시장이었습니다.
초창기 McDonald 식당은 무조건 York Rooftop을 놓았으며, 발 빠른 몇몇 설치 업자들은 officetel 등에 York Rooftop을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빙축열 냉방용 대형 brine chiller로는 York Screw Chiller와 Ice Ball 로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서 대형 빙축열 시장을 독점하다 시피 했으며, Frick의 저온 냉동용 Screw Compressor Unit 도 열심히 틈바구니를 헤집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다음으로 노리는 틈새시장은 Gas Engine 으로 구동되는 대형 터보나 스크류 chiller,  스팀터빈으로 구동되는 터보 chiller로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를 누빌 생각으로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던 중,  Kam Leong (
*다음 페이지에 나옵니다) 의  패키지 에어컨 들려다 팔라는 개방 시장 정책을 반대하다가,
1996년을 국내 판매 Ex-factory $900만, 해외 판매 $500만 불 판매 실적의 대미를 장식하는 해로 만든 후, 97년 초 30년의  HVAC&R 업을 은퇴했던 것이었습니다.
 


York는 완제품으로는 틈새시장을 타게트로 해야지, 개방 시장(Open market) 을 목표로 국내 제조사와 경쟁할 수는 없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개방 시장을 목표로 할려면, 국내에 공장을 세워 Carrier처럼 국산 에어컨을 다량 제조하여 팔던지 해야하는데, 이 것도 강성노조와 값싼 중국제품 때문에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돈 한푼 투자 안하고, York Malaysia 등에서 후진국형 에어컨을 수입해서 국내업자와 Open Market에서 경쟁을 하라고 하는 Kam Leong은 완전히 또라이었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를 서릿발 같이 추궁하는 글이 다음 Kam Leong편에 나옵니다.

2003. 8. 10

 

 

2003. 8. 10   최초로 썼고,
2004. 1.  8    맞춤법에 맞추어 고쳐썼습니다.
 

2011.10  스마트폰에도 알맞게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