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의 HVAC 이야기"입니다.         방명록    질문/답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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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ic University (사우디아라비아)

수출하던 경원세기(Century) 제품의 품질이 국제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나 품질은 하루 이틀에 좋아질 성질의 것도 아니고, 당시 공장장에게 자세한 리포트를 보내도, 짜증만 냈지, 품질 개선은 요원하여,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Carrier와 Trane은 국내에 이미 대리점이 있었으므로, York 제품을 팔아보기로 하고, York에 Proposal을 보낸 것이 1983년 초였습니다.   Larry Cunningham 이 와서 면접을 하는 등 절차를 밟아, 6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3개월간의 긴 GETP 연수기간을 거쳐, 1983년 10월 경에, 최초로 York의 한국총대리점을 맡았습니다.

여의도 고려빌딩에 조그만 사무실을 열고, 처음으로 부닥친 일이, 당시 사우디에서 대림이 수주한 Islamic University였습니다.  당시에는 Hvac장비의 국내 수입이 금지되어 있을 때여서, 중동 시장을 겨냥하고, 일을 시작했었지만, 당장 큰 일거리에 부닥쳤습니다.

대상은  6000톤 칠러 6대였는데, 사양서를 받아보니 전형적인 Carrier 사양이었습니다.  

대림의 구매담당 부장은 담담하고 사려가  깊은 분이었습니다.
첫 대면을 인상 깊게 하는데도 작전이 필요했습니다.     1983년 6월 초에 "경원기계"를 사직했으나 모시던 상사 분들과 동료들과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사정없이 깝니다).  
직전에 모시던 "김병익" 상무님께 부탁을 했더니, 기꺼이 필자를 데리고, 대림의 담당 부장을 찾아 가서 첫 면담을 주선하여 주셨습니다.   부장과 김 상무님도 물론 첫 대면이었지만, 묘하게 통하는 그 무엇이 눈에 보였습니다.

     "데리고 있던 사람인데, 독립하여 열심히 하겠다는데, 착실한 사람이니, 잘 좀 도와주십시오"하는 정도의 소개 말씀이었지만, 필자로서는 천군만마를 거느리는 것보다 더 든든하였습니다.   

사양 검토는 김광선 과장이 했는데, 그 꼼꼼하고 치밀함과, 광범위한 지식에 놀랐습니다.   서류 작성은 York의 Bill Eastman이 했는데, 그 분도 대형 칠러에는 독보적인 지식과 경륜을 갖춘 분이었는데, 둘을 붙여 놓았더니, 과히 볼만했습니다.  기술 미팅은 몇 차례 있었고, 한 차례에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한 보따리가 되는 준비 서류는 깐깐한 김 과장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1983년 말로 기억됩니다.  부장을 좀 만나 선처를 부탁하여야겠는데, 사무실에서는 당초 사무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고, 무척 바쁜 분이라 따로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할 수 없이 결례를 무릅쓰고, 부장 자택으로 찾아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역삼동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퇴근 시간에 맞춰 아파트 입구 현관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연말 추위가 얼마나 매서웠는지, 지금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벌벌 떨고 서너 시간을 기다렸더니, 자정이 다되어,  얼근히 취한  부장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지금 퇴근하십니까, 부장님"
    "아이고, 이 사장, 이 밤중에 웬일이요"
    "부장님 좀 뵈려고 했는데, 일과 시간에는 부장님이 너무 바빠서 만나 뵐 수가 있어야죠."
    "추운데, 일단 집으로 올라 갑시다"
 
이렇게 해서 부장님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뒤 follow-up을 열심히 하여, 6백만불짜리 칠러의 수주에 성공을 하였고, 담당 부장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적당히 표했으나, 김병익 상무님께는 적절한 예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쓰입니다.

그 때 국내 Carrier 대리점은 동흥이었습니다. 그 때 동흥 사장님은 이춘광씨였는데, 중동 일로 크게 재미를 보시고 계셨던 때라, 이 프로젝트에 젊은 필자가 뛰어 드는 것을 귀엽게 보셨고, 물리치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하시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양이 Carrier사양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 필자같은 졸때기 한 사람 쯤 먹고 살도록 양보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아량이 큰 분이었지요.   후일담입니다 만, 물불을 안 가리고 열심히 뛰었던 필자를 칭찬하시는 말씀을 하신 것은 전해 들었습니다.   매우  훌륭한 분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중동에는 그 뒤에도 대형 프로젝트가 계속 나왔습니다.
York와 Carrier가  담합 (談合: 일본말로 "당고") 만하면, 차례로 재미있게 높은 마진으로 딸 수 있는 공사들이 많았지만,  미국의 Anti-Cartel 법 때문에, 담합이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마케팅 - 안티카르텔" 참조).

동흥 Carrier와 좀 "당고"를 좀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Carrier 측과는 일체의 접촉이 없이, 수주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수주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원체 큰 건이라, 시쳇말로 파리 떼가 달려들기 시작했었습니다.
  "대림의 전무와 막역한 사이라 다리를 놓을 테니, 따면 코미숀 좀 생각해라 - 거신"
  "구매부의 누구와 친구이니, 꼭 되도록 할 테니, 되면 얼마 주겠느냐 - xx"
  "대림의 모 상무를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상무와 우리는 동업한다.  알아서 해라 - 협박"
  "나는 대림 회장님과 막연한 사이다.   되도록 해주겠다 - 용돈 좀 우선 다오  - 어느 영감님"
  " 기타 등등"
  진행과정에서 Technical, Commercial Nego는 담당  김광선 과장과 부장 선에서 결정되었지, 일체의 외부 압력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일체를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라는 한 마디로 훗일 겪어야 할 재난을 용케도 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통찰력이었습니다.    "당고"도 "청탁"도 일체 배제했으나, 한 분께는 끈질기게 청탁을 하고 졸라댔습니다.    영세 받은 지 얼마 안 될 때라, 든든한 빽인 하느님께 매일 애원도 하고 협박도 했지요.    지금도 저의 신앙은 기복신앙 (祈福信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급 수준이지만, 그래도 들어주는 분이 계시다고 생각하면 항상 마음 든든합니다.  요즘도 이렇게 떼를 쓰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 제 친구 유영의 간 기능을 정상화 시켜주시고, 이세현의 폐에서도 암세포를 없애주십시오.   빨리 건강을 되찾게 해 주시어 예전 처럼 필드에도 같이 나가고, 소주잔도 부딪치게 해 주십시오.    아니 꼭 해주셔야 합니다.   아셨지요?"
(** 이건 기도가 아니고 협박입니다.  그러나 들어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 


2001. 11. 11  처음 썼고,
2004. 1. 2.  맞춤법에 맞게 고쳐 썼습니다.
  
2011. 10 스마트폰에도 알맞게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