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의 HVAC 이야기"입니다.         방명록    질문/답변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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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이야기 - 아프리카


중동에 이어 아프리카에도 수출을 시도했습니다.    1980년도 이었습니다.

에집트를 교두보로 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Nigeria와 Ivory Coast에 약간 씩 수출하게 된 동기를 만들었습니다.

 

Kotra 가 주관한 Nigeria 의 Lagos 한국상품전시회에 에어컨과 에어컴프레서 출품 하였습니다.    왁짜지걸하고 구경 오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Nigeria는 영국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어, 지식층은 영어에 능통합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새까만 사람 한 분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속사포 같은 말씨로 계속 괴롭혔는데, 아프리카 말인지 영어인지 알 수가 없어,  당신 지금 무슨 언어를 쓰느냐고 물었더니 영어라고 했습니다.

이 양반은 전시했던 우리 에어컴프레서를 싼 값에 인수받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에어컨을 거래하기로 한 딴 사람이 가져가기로 했었습니다.   전시회가 끝난 다음 날 일찍, 나는 다음 목적지 Ivory Coast로 떠났는데, 늦게 남아있었던 한국 상사 직원 한 분이 큰 곤욕을 치렀다고 뒤에 알려주었습니다.  이 까만 양반 왈  "에어콤프레사는 내가 가져가기로 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주었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국 상사 직원이 "나는 모르는 일이고, 그 물건을 출품했던 사람은 떠났다"고 했으나, 그 양반 왈 "당신이 그 사람인데 무슨 소리냐"며 나와 그 상사 직원을 같은 사람으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흑인을 보면 잘 구분이 안 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동양 사람을 보면 구분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전시회)                                                                    (음침했던 Lagos 시가지)
 
Nigeria는 문제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부패가 만연하여 있었고, 국제 무역 사기는 Nigeria가 독차지 하다 시피 했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 출국할 때 이야기입니다.   다음 항공편을 분명히 예약을 했는데도, 출국장 항공사 직원은 만석이라 여유 좌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5$ 정도를 뇌물로 집어 주어야 탑승권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지폐가 중간 책을 통하여 분주히 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그 중간 책 한 사람을 붙들고 $를 주면서 사정사정을 했더니, 특별히 봐 주는 것이라고 선심을 쓰면서 탑승권을 받아 주었습니다.

이 지긋 지긋한 나라는 일단 떠나게 되었구나 하고 안도하며, 정시보다 몇 시간 늦게 떠나는 지정 항공기에 탑승을 해보니, 좌석 거의가 통통 비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다음 나라 Ivory Coast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라 아직도 공용어는 불어였습니다. 수도 아비장에 있는 거래처 사장 Chalian은 Almenia사람인데, 늦둥이 딸을 둔 사람으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모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사람이었으나, 텔렉스는 어김없이 불어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에어컨과 무역용어에 해당 되는 문장이었기 때문에 그 때 내가 독습하기 시작했던 기초 불어로도 해독이 가능했었습니다.    회신은 물론 영어로 했고.   
한국에 왔을 때 극진해 대접해 준 덕분으로 약간의 주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Ivory Coast는 우리나라에서 먼 나라이고, 교역량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취항하는 선박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없던 때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장은 항상 납기에 쫓기게 마련입니다.     한번은 내일 출항하는 아프리카 서해안 행 선박에 선적하기 위하여 오늘 공장에서 출고를 해야 하는데, 아직 제품이 마무리가 안 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노조가 없던 때라, 나는 서둘러 내리 공장에 가서 관련자 모두 잔업을 시켰습니다.   컨테이너는 밖에 대기하고 있었고,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포장을 하고 있었는데, 비가 추적추적 오는 것이었습니다. 

컨테이너가 공장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어, 비를 맞고 싣든지, 아니면 선적을 한 달 늦추던지 양자택일을 해야 했습니다.   꺼림직 했지만 그냥 싣기로 했습니다.   자정이 다되어 컨테이너는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걸려 도착한 물건을 찾은 Chalian은 실망했습니다.   에어컨에 녹이 많이 났고, 마그네트 스위치 등은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면서, 다음부터는 비가 새는 컨테이너를 절대 쓰지 말고, 선별하여 새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개의 수입업자들은 수입관세를 줄이기 위하여 undervalue를 했는데, Challian은 overvalue를 원했습니다.   차액은 제 3국에 떨어뜨리기 위함에서였지요.   외환처리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로서는 overvalue로 인한 차액을 송금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 계속 ---


 2011.10  스마트폰에도 알맞게 고쳤습니다.